
이번에 리뷰 할 작품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불후의 명작 『어린 왕자』입니다.
어린 왕자는 흔히 어린이 동화로 치부되기 쉽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다시 읽어보면 의미 속에 내재되어 있는 표현의 정수를 느낄 수 있는 진정한 성인이 되기 위한 아름다운 철학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숫자에만 집착하는 어른들의 세계
코끼리를 삼킨 보아뱀 그림을 어른들에게 보여주어도 그저 모자 같다며 우스워하는 어른들의 모습과 집이 가지는 그 자체의 아름다움과 느낌보다는 그저 집의 가격이 얼마짜리 인지 묻는 숫자를 통해서만 가치를 판단하는 어른들의 세계를 꼬집는다.
“어른들은 누구나 처음에는 어린이였다. 그러나 그것을 기억하는 어른은 별로 없다.”
그렇다. 우린 모두 어린 시절을 경험했고 어른이 된 지금도 여전히 그 경험과 추억들을 공유하고 있다. 단지 어른이 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왜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음에도 과거는 전혀 생각도 하지 못한 채 우리는 현재의 기억만을 가지고 살아가고 과거를 배척할까.
우리들 또한 숫자와 수치만을 이야기하지 않고, 사람을 볼 때 그 사람 자체만 바라보았던 때가 있었고 지금과 같이 외모와 연봉, 스펙, 자가의 유무와 차가 무엇인지와 같은 외면의 껍데기만 바라보지 않았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이 과연 성숙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본질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게으름과 물질에 중독되어 가는 과정인지 의문을 품게 된다.
나만의 별을 떠나 마주한 어른들의 가면
어린 왕자가 소행성 B612를 떠나면서 만난 권력에 사로잡힌 왕, 칭찬만을 바라는 허풍쟁이, 현재를 잊으려 술을 마시는 술꾼, 별의 개수를 세며 소유하려는 어른들.
이들을 보면, 다른 행성에 있는 기이한 존재들이 아니라 바로 오늘날의 SNS와 현실 사회에서도 발에 치일 정도로 많은 자아도취와 허영, 맹목적인 경쟁에 빠져 도태되어 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어린이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껍데기에 매몰되어 사는 이들의 모습이 현대의 우리의 모순적인 모습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장미와 여우, 그리고 ‘길들임’의 진짜 의미
지구의 장미원에 피어난 수천 송이의 장미를 보며 실망하던 어린왕자. 하지만 사막 여우와의 만남을 통해 자신이 B612 별에서 물을 주고 바람막이를 세워주며 시간을 쏟았던 그 장미만이 나에게 ‘오직 하나뿐인 존재’임을 깨닫는다.
“네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네가 그것을 위해 쏟은 시간 때문이야.”
여우가 알려준 길들인다는 것과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통찰은 어떻게 보면 수많은 사람들과 가벼운 관계를 맺고,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가스라이팅을 하고 이중성이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장미꽃을 피우기 위해 쏟은 시간처럼 서로를 위해 이득만을 취하려는 것이 아닌 배려와 애정이 있어야만 진정한 인연이 되는 것이라는 교훈을 려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잊고 지낸 본질을 직시하고 나만의 별로 돌아가는 지혜
무거운 껍데기 즉, 육체를 벗고 나만의 장미가 기다리는 별로 돌아가기 위해서 뱀에게 자신을 맡기는 어린 왕자. 그리고 그를 떠나보내며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는 비행사. 이것은 단순히 헤어짐의 비극이 아니라 진정한 나의 삶과 본질을 찾아가는 어른으로의 여행이 아닐까.
“가장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 보아야만 분명하게 볼 수 있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은 어린 시절의 순수함이 아니라 나의 삶을 찾아가는 본질을 바라보는 성숙한 시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저 물질과 욕심, 그리고 욕망, 수치에 가려져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어린 왕자는 앞만 바라보며 달리지 말고 뒤도 돌아보며 하늘도 바라보는 낭만과 차분함을 알려주려는 것이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