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작품은 제목만 봤을 때, 소위 노이즈 마케팅을 노려서 흥행을 바라는 수준 낮은 작품이 아닐까 했던 책이지만, 제목과는 다르게 그 속에는 타인과의 관계와 운명을 마주하는 스스로의 선택.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빛나는 일상을 기록하는 아름다운 인생을 기록하고 있는 명작입니다.
타인과의 관계에 대한 고독
다른 사람에게 관심 없이 책 속에 갇혀 고립된 삶을 사는 남자 주인공 ‘시가 하루키’와 췌장암으로 시한부 선고를 받았지만 겉으로는 항상 밝고 활발한 모습을 보이는 여자 주인공 ‘야마우치 사쿠라’.
우연히 병원에서 사쿠라의 비밀스러운 일기장 ‘공병문고’를 줍게 되면서, 두 사람은 시한부의 인생을 살아가는 사이를 공유하는 유일한 사이가 된다.
“산다는 건 누군가와 마음을 나누는 거야. 누군가를 인정하고, 누군가를 좋아하고… 혼자서는 내가 살아있다는 걸 느낄 수 없어.”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중에서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다. 나의 존재를 누군가 인정해 주고, 나의 가치를 다른 이가 알아줄 때 비로소 삶의 이유를 깨닫는다.
현대의 사회는 점점 철저한 ‘개인주의‘의 세계로 들어가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타인을 배제하고 은둔하는 삶을 지향하는 청년들도 가속화하고 있으며, 이러한 모습은 대인관계를 필요 없다고 생각한 사쿠라와 하루키가 관계를 맺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지는 점과 대조된다.
운명이라는 핑계가 아닌 선택이 만든 인연
정반대의 성향을 가진 두 사람은 사쿠라의 죽기 전 ‘버킷리스트‘를 함께 수행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고,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어간다.
사쿠라는 하루키와 지내면서 우리가 만난 것은 결코 운명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한 결과가 서로를 끌어당겼음을 알게 된다.
“우리가 만난 건 우연도 아니고, 운명도 아니야. 네가 해온 선택과 내가 해온 선택이 우리를 만나게 한 거야.”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중에서
우리는 종종 ‘운명‘이라는 단어를 쉽게 쓴다.
남녀 간의 관계에 있어서 우리가 만난 건 운명이라고 하는 것이나, 어떠한 일을 하게 되거나 이 순간을 맞이한 것은 운명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사실은 자신의 노력과 선택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포장일 수 있다.
이러한 결과가 우리에게 도달하게 된 것은 우리가 용기 있게 한 발씩 걸어온 소중한 노력의 결실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예고된 비극과 뜻밖의 이별 속 깨달음
삶의 유효기간이 지난 후에 세상을 떠날 줄 알았던 사쿠라는 아이러니하게도 퇴원하는 날 갑작스러운 무차별 묻지마 살인 사건의 희생양이 되며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다.
슬픔에 잠긴 하루키는 곧장 사쿠라의 집을 찾아가면서 ‘공병문고‘를 읽게 되고, 사쿠라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 스스로 우뚝 서 있는 하루키를 동경해 왔음을 깨닫는다.
인간의 삶은 유효하다.
더욱 무서운 건 그 시기를 알 수조차도 없다. 오늘이 될 수도, 내일이 될 수도 있다.
무미건조한 매일을 보내고 있는 이 순간이 누군가에게는 그토록 갈망하던 순간이었음을 주변의 부재로 인해 실감하게 되는 경우가 점점 늘어난다.
‘나’라는 고립된 감옥을 열어줄 수 있는 세상도 있음을 깨달았으면 한다.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너처럼 되고 싶어”, “네 안에서 영원히 살고 싶어”라는 진심을 담아 서로에게 보낸 마지막 문장, “너의 췌장을 먹고 싶어” 사쿠라를 떠나보낸 하루키는 비로소 슬픔과 고립에서 해방되면서 타인에게 먼저 손을 내밀며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게 된다.
“모든 진정한 삶은 만남이다. 인간은 ‘너’를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나’가 될 수 없다.”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나와 너』 중에서
사쿠라와 하루키 모두 스스로의 세계에서 타인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모순적으로 같은 세계의 두 사람이 만나 타인이라는 세상을 받아들이며 서로를 완성해 가는 모습에서 사회가 조금은 서로를 조금이라도 바라보는 낭만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