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든 사람들은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것을 전제로 자신을 정당화한다.”
1. 보이지 않지만 철저하게 보이는 귀천
방송을 보거나 또는 지인들과의 대화를 하다 보면, 높은 확률로 이에 대한 평가가 오고 가는 대화가 이어진다.
가령, 지금 자신이 준비하고 있는 직업이나 자격증에 대한 주제와 다른 사람들이 현재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연봉에 대한 이야기, 다른 사람들이 이 직업에 대해서, 나라는 사람에 대해서 어떻게 인식할지에 대해서, 미래 비전성 등에 대한 다양한 카테고리들을 나열하면서 구체적으로 세세하게 평가를 한다.
그런데 정말 우습게도 연봉이 낮거나, 사회적으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게 취급받는 그런 직업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직업에 귀천이 어디 있어. 네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하면 되지.”
“그런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우습게 생각하지 마. 그분들이 있기에 우리가 편하게 살 수 있는 거야.”라는 멘트가 거의 백 퍼센트 확률로 나오게 된다.
이 말이 틀렸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렇게 이야기하는 부류들을 보면 대다수가 고소득층에 속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분포도가 높은 편이었고, 현재 직업이 없거나 저소득층에 속하는 사람들도 내가 저 사람들보다는 낫다는 식의 대화가 오고 가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렇게 귀천이 없으면 본인이 하는 건 어떨까요?”
2. 말하는 것과 하는 것의 이중성
나는 늘 이렇게 발생하는 이중성이 섞인 대화에서 신경 쓰지 않고 무시하는 것을 지향하지만 한 번씩 정도가 지나쳐서 상대에게 저렇게 질문을 하면 상대방의 반응은 대개 2가지로 귀결된다.
상당히 당황을 하면서 자신은 현재 종사하고 있는 직업이 자기가 원하는 일이고, 굉장히 만족스럽다고 하거나, 말을 왜 그렇게 하냐면서 화를 내는 타입. 이렇게 2가지가 있다.
여기서 역하다고 생각되는 포인트가 도출된다.
정작 자신이 그 직업에 종사하기에는 연봉도 낮고, 대중이 그 직업을 바라보는 시선과 자신 또한 그 직업에 대해서 낮게 생각하는 그 태도가 대화 속에 은근히 포장되어 있지만 새어 나오는 그 이중성이 불편한 것이다.
“우리의 미덕은 대개 위장된 악덕에 불과하다.”
3. 도덕적 우월감을 무기로 하는 이중성
라 로슈푸코가 말했던 이 구절이 저들을 관통하는 명언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신이 더 우월하다는 전제 아래, 상대방을 높이는 언행을 통해서 평판을 높이고 윤리적으로 옳은 사람임을 강조하면서 부정적인 요소는 전혀 보이지 않고 이득만을 취할 수 있는 도덕적 우월감을 표출하는 것이다.
이러한 모순을 지적하게 되면 오히려 지적한 사람을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잘못되었다면서 나쁜 사람으로 몰아갈 수 있는 군중 심리의 명확한 먹잇감이 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중성을 느끼면서도 대개 페르소나(Persona)를 자신에게 씌우면서 지나간다.
반드시 직업적인 측면이 아니더라도, 어떤 주제에 대해서 비판이나, 견해를 제시하는 것 그 자체가 이미 자신에게 나쁜 이미지가 씌워지는 상황이 있는데 그런 상황 속에서 착하고 옳은 말만 하면서 이익이 되는 이미지만 챙기려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단호하게 그 인연을 멀리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세상의 어떤 노동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필요한 것이라면, 결코 하찮은 것은 없다.”
직업에는 귀천이 있고, 그에 따라 확실하게 계급을 나누어 차등적으로 대우하자라고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자신의 위치에서 자신을 위해, 그리고 가족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땀 흘리며 고귀한 노동을 이어가고 있다.
단지, 도덕적 우월감을 가장한 이중성을 손가락질하는 것이다. 차라리 귀천이 없다고 표현하고 싶다면, 나는 그 일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그 일을 누군가 함으로써 편안함을 얻고 있다고 솔직 담백하게 말하는 것이 어떨까.
나의 노동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사회적으로 헌신이 되고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일이다.
어떤 일이든 자신이 속한 사회에서 묵묵하게 그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모든 이에게 존경과 박수를 보내며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