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튜브 영상이든 커뮤니티나 지인들과의 대화, 처음 만난 상대와의 소통에서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주제는 단언컨대 ‘여행‘이라는 카테고리일 것이다.
전혀 문제 될 것은 없다. 본인이 다녔던 여행지에 대한 경험담과 즐거웠던 기억과 힘들었던 기억, 그곳에서 느꼈던 생생한 감정과 삶을 지향하는 데 있어서 여행의 중요성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대화에 끼어들 틈조차 없을 정도로 상대는 무한한 기쁨을 느끼고 있기에 경청의 자세만 가져도 나는 호감형 인간이 되어있으니까.
다만, 여행을 주제로 하는 대화를 이어가다 보면, 흔히 하는 말들이 거슬릴 때가 있다.
종교가 되어버린 ‘청춘 여행’
예를 들면, 최대한 젊을 때. 특히 20대 초반에 많은 경험을 하면 좋고 30대라면 퇴사를 중간에 한 번 해서라도 본인만을 위한 ‘나만의 여행‘을 강조한다.
나도 여행을 가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행에 대해서 크게 의의를 두지는 않는다. 그저 다른 지역, 다른 나라에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유명한 명소에도 가보면서 지쳐있는 심신을 회복하고 휴식하는 것에 몰두하는 편이다.
그렇다. 단지 이 정도 온도에서의 여행을 선호한다.
그런데 지인이든, 처음 본 지인의 친구이든 간에 여행에 대해서 ‘만병통치약’처럼 구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
젊을 때 안 가면 바보다. 그 나이 먹도록 해외여행 몇 번 안 가보고 뭐 했느냐. 견문과 경험을 넓혀야지 나는 매 년 2회 이상 해외행을 간다. 라는 말들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내 지인의 아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런 수준 낮은 사람과 잠시라도 같이 있지 않았을 것이다.
여행을 추천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여행을 가야 한다고 강조해서는 안 되며, 특히 인생을 배운다느니 견문을 넓힌다느니 마치 삶의 진리나 스펙처럼 찬양하는 이들이 적지 않게 있다. 아니, 거의 대부분이었다.
정말 웃긴 건,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 중에 다들 가장 유명한 카페나 음식점에 가서 주문한 음식이 나오기 전에 인스타그램 촬영 구도를 잡고 찍은 사진을 게시하기 바쁘다.
가장 인기가 많고 대중들이 자주 가는 명소만 찾아다니면서 돈을 소비하는 것에 치중하는 행동을 보고 있으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 어디에서 견문을 넓혔고 경험을 했으며 인생을 배웠는지? 그리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달라졌는지를 말이다.
자아를 찾는 여정으로 포장괸 쾌락적 소비
여행으로써 인생을 배우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말을 하고 싶다면 적어도 유명한 명소와 카페나 음식점만 돌아다니면서 돈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 나라의 현지인들의 문화와 역사의 깊이를 공부하고 그들과 함께 삶을 공유하면서 서로의 경험들을 나누는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보여야 하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나는 여행을 즐겼다. 돈 많이 쓰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좋은 곳 많이 다니면서 휴식을 취했다고 컴팩트하게 말하는 편이다. 견문이나 인생이라느니 그런 말을 내뱉을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한 탐구를 하고 온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경험을 빙자한 허영심
“사람들은 자신의 진부한 일상에서 도망치기 위해 여행을 떠나면서, 그것을 자아를 찾는 과정이라 그럴싸하게 포장한다.”
-알랭 드 보통 『여행의 기술』 중에서
돈을 소비하는 행동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돈 쓰고 놀기 위한 휴양을 인생을 배우는 숭고하고 가치 있는 과정으로 올려치기 하면서 남들에게 선구자인 것 마냥 경험적 우월감을 자랑하려는 그 얄팍한 기만과 허영심이 오히려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다는 것을 자각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심이 있다면 최소한 커뮤니티와 SNS 정도는 내려놓고 이야기해보는 것이 어떨까.
인생은 일상에 있다.
여행은 단지 고된 일상을 환기하기 위한 달콤한 휴식이자 욕망을 충족하기 위한 소비활동의 연속일 뿐이다. 알랭 드 보통이 말한 것처럼 매일 무미건조한 회사 출근과 퇴근의 연속,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삶. 내일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공간에 정해진 일을 하는 그런 쳇바퀴 같은 인생에서 잠시 벗어나 즐기는 오락행위일 뿐이다.
왜 매일 출근해서 퇴근하는 삶을 여행보다 낮게 평가하는가?
이른 아침 지옥철을 타고 치열하게 하루를 버텨내는 우리의 평범한 일상이야말로 진정한 나를 찾아가고 있는 최고의 여행인 것인데 말이다.
허영심과 오만함으로 가득 찬 내면을 가지고 어디론가 떠나버려도 당신의 본질적 껍질은 금이 가 있는 껍질일 것이다. 그러나 충만한 비전과 희망을 가진 하루를 보내고 있다면 이미 당신은 여행으로 얻을 수 있다고 믿었던 세상을 이미 가진 것이다.